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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일동포 역사학자의 일본군'위안부'연구》 참가 후기

역사홀씨 2025. 8. 2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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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목요일 오후 2시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3층 컨퍼런스룸에서 아오야마 가쿠인대학 명예교수 송연옥 선생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총 3가지 꼭지로 이뤄졌는데요, 첫번째는 일본군'위안부'연구의 여정에 관한 회고와 제국 일본의 성정치와 공창제의 역사, 식민지 공창제와 일본군'위안부'문제로 구성되었습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연구자 개인의 성장 배경에서부터 사관에 대한 고민들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덧붙여 가라유키상을 비롯해 일본 내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제시된 배경을 문학적으로 톺았습니다. 역사학과 여성주의가 만나야 하는 이유를 짚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제기된 기생관광 문제, 부산 완월동의 상황까지 짚어냈어요.
 
발표가 진행되는동안 피해자의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보다보면 강제의 협의성을 논의할 때에도 간접이냐 직접이냐를 가를 수 없는 모호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우리의 인식 속에 있는 고정된 상에서 벗어난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섬세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이 되기도 했고요.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도 아주 활발했어요. 질문이 너무 많아서 다 다뤄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Q. 피해자 서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정의를 구현해내는 방식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는 충분한 경청을 하고 있는가.
A. 한국 사회에 대해 충분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틀은 분명히 있어요. 한국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점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페미니즘은 식민지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재명-이시바 회담 예정되어있는데, 오늘 2015 합의 번복이 어렵다는 입장을 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힘 달라.
A. 뉴스를 봤습니다.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대통령은 휘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관련 조언을 줄 환경이 부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2015 합의는 문서화되어있지 않기도 하고 구두 합의에요. 헌법학, 안보학 등 관련 연구자들과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싱크탱크를 통해 입장이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닌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Q. 일본이 평화의 소녀상 철거 등 역사부정 움직임을 강하게 이어가고 있는데 일본 사회 내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A. 일본 내 보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믿을 수 없는 환경인데다가 우익에 대한 관련 기사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일본 내 기억이 형성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Q. 일본에서는 2000년 법정의 업적을 논할 때 천황제 유죄 판결, 일본 내 피해자를 동일선에서 논의했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 송연옥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오늘 강좌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페미니스트에 대한 평가도 들을 수 있어 인상적이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법정에 대해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부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나 꼭 알아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A. 일본 천황 유죄 판결이 나오면 앞으로 운동하기 힘들다는 것 때문에 불참한 듯 합니다. 마츠이야요리라는 의지와 실천력 가진 인물의 힘으로 실현 가능했는데 일찍 돌아가시고 일본 내에서는 계속 연구를 이어갈 힘과 결속력이 끊겼습니다. 그는 법정 기간 내내 바쁘기도 했지만 일신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도 운동을 만들어갔습니다. 또 다시 주목하고자 하는 인물은 바로 김지하에요. 둘을 이어서 볼 필요도 있죠. 


Q. 일본 정부가 공인한 홋카이도 내 유곽은 어업장, 철도부설장 등 남성중심 작업장이나 죄수들이 모여있는 곳에 배치했다고 알고 있다. 산업, 기업 위안부의 전신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메이지 이전 막부시대 선주민 아이누 납치와 인신매매, 성폭력이 빈번했다는 사료는 지속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제국주의에 기반해 설명되기는 어려운데 선주민 여성의 몸과 생활이 공창제 미싱링크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지점이 궁금하다.
A. 예창기 해방령이 만들어진 뒤, 홋카이도 유곽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합니다. 일본 정부는 항구에 정박한 서구열강의 문제제기에 약했거든요. 이것을 조선에 이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도 막부는 군사정권이기 때문에 군인의 발상속에서 대만 정복전쟁 때 위안소 설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문화가 아니고 성착취 조직입니다. 앞으로 발굴되어야 하지만, 문화는 아닌 것이죠. 되려 자본 축적을 위한 성산업(예를 들어 가라유키상)을 가리기 위해 구국강병을 앞세운 것이죠. 오히려 자본주의가 변절되는 지점을 분석해야하는데 연구하는 노력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현장에서는 연구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천착한 연구 결과를 들을 수 있어 감동이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연구는 언제나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중요한 점은 그 공백을 인식하고 어떤 연구가 이어져야 할 지 등대처럼 빛을 비춰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8월 22일에도 행사가 이어집니다. 다음 참가 후기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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